인플레이션이라는 은밀한 세금에 주목하라

 2019년 짐바브웨 정부는 100조 달러 지폐를 발행했다. 0이 무려 14개나 찍힌 지폐였다. 그렇다면 이 100조 짐바브웨 달러의 가치는 얼마였을까? 0.003 미국 달러에 불과했다. 

100조 짐바브웨 달러

 

 이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짐바브웨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은 국가다. 정부가 돈을 마구 찍어내며 화폐 가치가 하락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1970년 당시, 빅맥 하나는 65센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50년 후인 지금은 약 80배가 상승한 5달러가 되었다.

빅맥 가격 변화, 출처 : Daum 한국 경제

 

 모두 '인플레이션'때문에 생긴 일이다. 인플레이션을 대부분 물가 상승으로 알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물가 상승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10년 6억에 매입할 수 있었던 아파트를 예로 들어보자. 2022년, 그 집이 약 10억이 됐다면 우리는 집을 팔고 얻을 이익을 생각하며 흥분한다. 하지만 이내 2022년에는 10억으로 기존의 집과 비슷한 수준의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새로운 집을 사려면 돈을 더 들이거나 눈을 낮춰야 한다.

 

 바로 이러한 현상이 인플레이션이다. 정확히 말해 인플레이션은 돈이 가치를 잃을 때 발생하는 가격의 왜곡이다. 앞서 말한 아파트의 가격은 수년간 점진적으로 진행된 인플레이션을 반영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이것을 '화폐 착각'이라고 부른다. 화폐 착각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왜곡된 가격을 현실 세계의 가치가 반영된 것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화폐 착각에 빠지는 이유는 화폐는 안정적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원화의 가치는 통화 시장에서 계속 하락하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여전히 1000원은 1000원의 가치라고 여긴다.

 

 그런데 경제 전문가들은 낮은 강도의 인플레이션은 필요하며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미국 연준 의장 제롬 파월은 2% 정도의 안정적인 인플레이션은 경제가 잘 작동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우리 생활에 전반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친다. 

인플레이션이 나쁜 이유 3가지

 1. 인플레이션은 은밀한 세금이다.

 한 회사원이 연봉 4000만 원을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연간 물가 상승률이 2%라면, 생계비가 상승해 그의 연봉은 사실상 80만 원 감액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식으로 인플레이션은 직장인들과 연금을 받는 은퇴자들의 소득을 은밀하게 갉아먹는다. 또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많은 사람들이 높은 과세 등급으로 떠밀린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임금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회사원 연봉이 4300만 원에서 3년 후 4800만 원으로 상승했을 때, 명목소득은 500만 원 늘었지만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소득의 차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과세표준 구간이 높아지며 세금 부담률은 더 증가하게 된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브래킷 크리프'라고 한다.

소득별 과세표준, 출처 : 책식주의

 

 2. 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사라진다.

 1970년대 미국은 살인적인 자본 이득세와 투자자들의 얼어붙은 투자 심리 때문에 벤처 투자 시장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인플레이션이 극심한 나라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순조롭게 출발한 벤처 업체들 대부분이 결국 중간에 포기했다. 베네수엘라와 페루 등에서 짓다 만 건물이 많이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빈민가 토레다비드

 인플레이션의 아이콘인 베네수엘라의 45층 건물인 다비드 타워는 1994년 공사가 중단되었는데 이 건물은 수년 동안 빈민들에게 점거당했다. 다비드 타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빈민가로 불렸다. 결국 불법 거주자들은 퇴거당했지만 건물은 여전히 비어 있다.

 

 3. 범죄가 급증하고 빈인빈 부익부가 심화된다.

 인플레이션이 절정에 달한 국가에서는 범죄가 급증한다. 연간 물가 상승률이 60,000%까지 치솟은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가장 높은 범죄율을 기록했다. 

 

 물가는 대개 사치품보다 기본 필수품과 관련해서 더 상승하는데 경제학자들은 이를 '인플레이션 불평등'이라고 부른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저소득층은 타격을 입는 한편, 전문 지식을 갖춘 개인들과 기업들은 뜻밖의 이익을 얻는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유해지는 것이다.

 

 왜곡된 자본 시장에서 일부 사람들이 부당하게 이익을 얻는 모습을 보며 사회적 신뢰가 훼손되고 공동체는 와해된다. 결론적으로, 인플레이션은 나쁘다. '낮은 인플레이션은 경제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말에 하루하루 힘들게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은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 도서 : 화폐의 추락, 출처 : 알에이치코리아

 

<출처 : 책식주의>